누구에게나 추억의 장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곳에 방문하면 현재의 시점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때가 생각나고 그 기분으로 머무르는, 그런 곳 말이다. 내겐 이 협재해수욕장이 그런 곳이다.
정말 많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해변가까지 걸어올 수 있는 곳에서 3박 이상 머물렀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정말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밤에도 나오고. 그전에도 와봤던 적이 있긴 한데 그때는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고 아마 이때의 기억으로 계속 여길 추억 삼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밤에 찍은 사진은 없구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었는데 밤에 그 방에 머무르는 친구들과 가볍게 저녁도 먹고 술을 마시고 잠깐 이 바다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랬다. 근데 나의 경우 그때 뭐가 피곤했는지 아니면 전화 통화를 해야 했는지 금세 다시 방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근데 바로 옆자리에 잠꼬대가 심한 군인 친구가 발이 내 침대로 넘어오고 코를 심하게 골아 잘 못 자긴 했지만 말이다.
다 그때의 추억들인 것 같다. 그 숙소도 첫 직장을 다닐시에 영화 어느 장면에서 보고, 퇴사하고 저기 꼭 가봐야겠다 싶어서 가본 것인데 딱 알맞은 자리도 선점하고 아무튼 퇴사 후 정말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채운다는 마음으로 갔던 숙소와 장소여서 그런지 더 애틋하게 기억에 남고 있는 것 같다. 혼자이기도 했고!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바다 색깔이 정말 예뻐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여기 바로 앞에 오메기 빙수를 파는 곳이 있는데 처음 혼자 왔을 때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다음엔 혼자 오지 말고 누군가랑 와서 다 먹어봐야겠다 싶어서 또 가봤는데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와 다르게 좋은 자리에 앉아 뷰를 즐길 순 있었다.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아무래도 바다 한 가운데에 혼자 앉으셔서 시간을 보내시는 관광객 한분 때문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과 같이 오신 것 같았는데 다른 분들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계시고 혼자 물에 들어가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내 감정이 겹쳐져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바다도 바다지만 하늘도 정말 맑고 푸르다. 물론 날씨운이 따라주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때 날씨 정말 좋았구나. 그래도 몇년만에 왔다고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 피자를 맛있게 먹었던 가게가 사라지고 기념품샵이 들어섰더라. 뭔가 추억 여행을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때 혼자 돌아다녀봤던 곳들을 돌아다녀보자 싶었는데 많은 것들이 사라져 좀 아쉽기도 했다.
아 그래도 정말 행복한 순간은 있었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를 잠시 가봤는데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영업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 시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근데 바로 앞집에도 카페 겸 게하가 있었는데 내가 몇 년 전에 봤던 댕댕이들이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물론 댕댕이들은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닌데 댕댕이들을 보면서 거기서 스텝으로 일하는 한 친구의 통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제주도의 경우 휴학을 하거나 잠시 쉬면서 일을 하는 학생 친구들이 많다. 내가 놀러왔을 때도 뭔가 그랬고. 근데 그 친구가 학교에 휴학 신청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편한 복장과 댕댕이들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 왔을 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물론 난 휴학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퇴사를 하고 온 것이지만 그때도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많은 감정이 생겼다. 그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뭔가 굉장히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이었다. 댕댕이들 때문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그런 우연한 상황들이 나를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마 다음에 여기 와도 지금이 아닌 이런 추억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이 횡단보도 사진이 마음에 든다. 언제부턴가 뭔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의 사진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닐텐데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뭔가 이렇게 혼자 있는듯한 느낌의 사진들이 좋단 말이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추억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뭔가 과거에 얽매여서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한탄하고 그러면 답답하고 그렇다. 근데 생각해보니 오늘 포스팅을 보면 내가 약간 그러고 있었네. 근데 특정 장소에서만 그런 것이니 괜찮다고 합리화를 해봐도 되려나?
그래도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장소가 여행지에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는 것 같다. 당시에는 몰라도 나중엔 추억이 될 장소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겠지. 아주 특별한 곳은 드물겠지만 말이다. 혼자 여행을 할 때 뭔가 애매할 때 빌미로 추억여행을 떠나도 되겠고. 지금 내가 이런 고민을 해서 그런 것 같다.
다음 달 초 정도에 혼자 여행을 떠날까 싶은데 아직 구체적으로 뭔갈 정하지 못했다. 근데 오늘 포스팅한 곳의 장소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뭐 잠시 지나치다 들릴 순 있어도 이때의 감정을 다시 찾으려고 하진 않아야지. 뭔가 이번에 행복하다기보단 다른 감정이 들 것 같아 참아야겠다. 여행 포스팅에서 뭐 별 이상한 이야기들만 한 것 같은데 아무튼 협재 해수욕장 한 번은 가보면 좋은 곳이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긴 해도 그 매력이 있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