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던 인생 김치와 컵라면 조합!
이년전인가. 트레킹하고 싶었던 섬이 있어서 서울에서 머나먼 통영까지 2박 3일 여행을 갔었다. 2박 3일이긴 했지만 버스를 타고 방문했기 때문에 오가는데만 10시간이 걸렸고 사실상 자유는 하루였다. 그 하루를 온전히 그 섬에 쓰고 싶었다. 근데 가기 전부터 날씨가 안 좋더라. 날씨 운이야 항상 안 좋았기 때문에 익숙했는데 배가 뜨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계획을 잡고 출동한 것 날씨가 좋아지길 바랬다. 그리고 전날, 전화를 해 다음날 배가 뜨는지 확인을 해봤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아침이 되봐야 알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게 아침이 됐고 당장 비가 오는지부터 확인했다. 비가 안 오더라. '와 통영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하면서 전화를 해봤는데 배가 뜨지 못한다고 하시더라. 이유는 바람이 쌔다고.. 비만 안 오면 되는줄 알았는데 바람까지 고려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그냥 주 목적을 채우지 못한체 이것저것 하다가 서울로 복귀하게 됐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인 이번 4월말, 이렇게 그때 들어가지 못했던 곳을 다녀왔다. 솔직히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날씨 걱정, 배 걱정을 했다. 아침에 딱 배에 타고 출발하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도 살짝 걱정하긴 했는데 뭐 워낙 날씨가 쨍쨍하고 더웠어서 괜찮았다. 사실 먹는 포스팅이기 때문에 등산에 관한 이야기는 짧게만 하려고 한다. 여기가 정상은 아니고 거의 정상 근처의 사진인데 바다의 모습은 대충 이렇다. 푸른 바다 정말 오랜만에 본다. 수영하고 싶더라. 그리고 트레킹이라고 말하기엔 정말 등산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힘들어서 놀랐다.
솔직히 중간에 오르다가 다음 배 시간이 모자를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까 싶었는데 여기보다 훨씬 높은 북한산 왕복도 세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은데 여기서 시간이 더 걸리진 않을 것 같아 포기하지 않고 올라갔다. 확실히 난 평탄한 곳보다 경사 높은 곳을 더 잘타는 것 같다. 가파르더라도 좀 빠른 느낌이 들면 몸이 더 따라준달까. 포기하지 않고 올랐고 마지막에는 나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다. 원래 등산을 하면 그냥 온전히 그날 하루를 다 쓰기 때문에 시간 계산을 안하는데 이렇게 다음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산행 시간을 체크한 경우는 또 이번이 처음이다. 나름 압박오더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내려왔고 아까는 정신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바다를 잠시 즐겼다. 물 정말 맑더라. 물론 산 타면서도 바다를 보긴 봤다. 완전 날씨가 여름 날씨여서 빨개벗고 좀 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 아쉬웠다. 이 섬 이름은 비진도라는 곳인데 여기서 1박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사람들은 다 물놀이하고 그러겠지? 아무튼 내 예상보다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고 그냥 카페나 가서 시원한 커피 한잔하려고 하다가 본의아니게 가볍게 식사를 하게 됐다. 횟집이 있었는데 차마 거기 들어갈 기분은 아니더라. 좀 덥기도 했고 식사를 즐길 배는 아니었다. 차라리 이따 도심에 가서 뭔가 제대로 먹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옆 마트 같은 곳에 들려서 가볍게 컵라면 하나로 때웠다. 이때까진 몰랐다.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김치를 만날 줄은!
유명한 몽돌해변을 지나 이렇게 COFFEE라고 심플하게 쓰여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막 들어왔을 때 주인분처럼 보이는 분들이 계셨는데 자기들은 그냥 손님이라고 하셨고 옆에 횟집으로 가 말하라고 말씀 주셨다. 그렇게 횟집에 들어가니 건장한 남자 한분이 우리를 응대해주셨다. 그러고보니 메뉴판에 저렇게 적혀있구나. '여기 주인은 옆가게 홀써빙 중입니다. 주말은 많이 바쁩니다. 블라블라~' 나중에 이야기하면서 알게 됐는데 CCTV로 다 확인하고 계시고 뭐 셀프로 돈만 내고 먹기도 하나보다. 하긴 한창 여름 때는 굉장히 바쁠테니!
팥빙수 8천원, 커피 3천원, 맥주 2천 5백원 등등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구구단 세정 싸인이 있더라. 이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방송 촬영온 적이 있다고. 그리고 주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막 지난주에도 촬영을 했었다고 한다. 근데 우리가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촬영팀이 한팀 오더라. 은근 오늘따라 여기 촬영팀 많이 보이긴 하더라. 슬슬 여름 휴가 특수여서 미리 촬영을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커피 주문을 했는데 아메리카노는 괜찮은데 라떼는 맛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 괜히 재밌었다. 말씀하시는게 유쾌하시더라. 사실 라떼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서 바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는 식사를 다 마치면 CCTV를 보고 타이밍 맞춰서 준다고 하셔서 우선 콜라 한캔을 주문하여 같이 먹기 시작했다. 우선 컵라면 끓는 물을 넣고 익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아까 등산하느라 힘들었기 때문에 시원한 콜라 한잔을 하고 김치를 하나 먹어봤다. 근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운동 후 먹는 것은 모두 꿀맛이라고 하지만 현재 배가 고픈 상태도 아니었고 평소 김치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태어나서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신 김치를 좋아하긴 한다. 뭔가 김치 부침개 해먹을 때 먹기 딱 좋은 그 상태! 근데 이거 한입 먹자마자 바로 김치부침개 해먹고 싶더라. 정말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아직 면발이 익지도 않았는데 김치만 먹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손이 계속 갔다. 나중엔 그래서 김치 조금 더 받을 수 있냐고 여쭤봤다.
그래도 중간에 잊지 않고 면을 한번 뒤적거려줬다. 소스를 흔들지 않으면 위에 이렇게 고여있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에 한번 섞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이렇게 야외에서 먹어본다. 엄밀히 따지면 야외는 아니지만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고 화창한 날씨와 함께 하니 야외 같았다. 평일에도 일상처럼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고됨이 있기에 이런 것에 행복을 느낄수도 있겠구나 싶다. 근데 사실 속마음은 그 고됨 안 느껴도 충분히 이 일상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듬에 관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경험했다.
타이머를 별도로 재진 않았고 성격이 급해서 대충 먹을 때가 된 것 같아 뚜껑을 해체하고 한입 먹어봤다. 살짝 꼬들꼬들 하더라. 근데 이렇게 먹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먹다 보면 나중에 먹는 면은 딱 알맞은 상태가 된다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푹 늘어진 것보다 이렇게 살짝 꼬들거리는 것이 더 좋다. 푹 익어서 늘어진 것은 뭐라고 해야하지. 흐물흐물해서 맛도 없게 느껴진달까. 지금 이 상태가 딱 좋았다.
인생 김치와 함께 먹어봤다. 와 근데 솔직히 정말 김치 너무 맛있더라. 뭐 특별한 것이 있는진 모르겠다. 그냥 너무 맛있었다. 통영, 거제도 라인이 원래 요리를 잘하나? 솔직히 젓갈류 많이 들어간 것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 향에 적응을 못하겠더라. 근데 여긴 달랐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뭔가 집에 두고두고 먹고 싶었다. 그래서 사장님이 오셨을 때 은근슬쩍 김치 리필을 하면서 여쭤봤다. 따로 판매하시냐고. 근데 별도 판매는 안하신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직접 담그시는데 담글 때마다 딱 180포기만 하신다고 한다. 나처럼 판매를 문의하는 사람이 많은데 마진이 안 남고 너무 힘들어하신다고 그런 판매는 안하신다더라.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역시 나만 맛있어 하는 것이 아니구나. 솔직히 이 김치 먹으러 여기 다시 오고 싶다. 그땐 뭐 시기를 맞춰서 물놀이도 하겠지만 진짜 너무 맛있었다. 포장해오고 싶었는데 판매도 하는 것 아니시고 내가 회를 먹는 것도 아니라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번 더 가져다 주신 것으로 나름 만족할 수 있었다.
별로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컵라면 바닥이 보인다. 역시 하나는 금방 해치우게 된다. 몇 젓가락 하니까 없어지던데. 솔직히 이때는 계속 지금 이 포스팅에서 말하고 있지만 다른 반찬에 손과 마음이 더 갔다. 오히려 반찬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더라.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메인 요리 냅두고! 아무튼 솔직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인생의 무언가를 만날 수 있었꼬 괜히 신나고 한편으론 아쉬웠다. 앞으로 평생 못 볼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언제 여길 다시 올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여기 그냥 눈에 보이는 식당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된다. 커피도 맛있더라. 원두나 그런 고급스러운 것은 모르지만 맹물 느낌 전혀 아니고 아메리카노 맛을 모르는 나조차 고소하게 맛있었다. 뭔가 사장님 센스가 있으신 것 같다. 솔직히 휴양지라든가 휴가철 장사를 하는 곳 퀄리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대게 한철 장사다보니 실력보단 정말 장사를 하는 곳이 많더라. 근데 여긴 예외다. 메인인 회를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기본을 보면 전체를 알 수 있다. 다음에 또올지 모르겠지만 그때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회와 김치 마무리로 아이스 커피 한잔해야겠다. 좋은 추억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