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물가에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게 먹을 수 있는 가정식 백반집
개인적으로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다는 것만 기억한다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떠오르는 것들이 그냥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장면들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근데 주변을 봐도 뭔가 개인적으로 조금 더 디테일하게 기억하는 것 같긴 하다. 갑자기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면, 한때 밖에서 한식을 사 먹지 않을 때가 있었다. 왜냐하면 한식은 집에서 매일 먹는 것이니까. 나가서 돈을 지불하고 먹으면 굳이 한식이 아니라 다른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 맛이 그 맛이니까. 그래서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딱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원래 주말마다 탁구를 쳤던 친구들이 있다. 탁구를 치고 중간중간 적당히 점심 내기를 한 뒤에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근데 이 두 친구들은 부대찌개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래서 난 어느 날은 반대 의견을 표했고 어느 날은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도 왜 이걸 굳이 밖에서 사 먹냐는 식의 말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저런 말을 하면서 나도 맛있게 먹긴 했다. 운동하고 난 뒤에 하는 식사가 맛이 없을 수가 없겠다. 아무튼 밖에서 한식 사먹는 생각을 떠올리면 그때 그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이제 그 친구들은 연락하고 지내지 않지만 그래서 더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날은 처음 와보는 가게에 방문했다. 이전에 이 근처에 나름 맛집이라 불리우는 가게가 있어서 거길 갔었다. 근데 웨이팅이 있었고 그 웨이팅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오늘 소개할 이 가게도 사람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기도 맛있나 하면서 둘러봤다. 간판부터 안에 내부까지 둘러봤을 때 뭔가 이런 곳이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한번 와봐야겠다 싶었고 이렇게 오게 되었다. 원래 가정식 백반집의 경우 메뉴가 간소한데 여긴 나름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가격은 심플했다. 모든 메뉴 7천원. 솔직히 요즘 싸다는 곳을 가도 8천 원이 기본이다. 그것도 저렴한 것이다. 근데 그보다 천 원이나 더 저렴하다니. 이날 첫 방문이라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함부로 평가하긴 힘들었지만 일단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검증이 된 것일 테니 괜찮겠다 싶었다. 번화가에 있는 맛집 같은 곳 아니고서야 이런 동네 장사는 사람이 몰리면 대충 괜찮다고 보면 되겠다. 그 사람들이 한번 먹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또 안 올 테니 말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야 재방문 고객을 놓쳐도 신규 유입이 어느 정도 되지만 고객이 한정된 곳은 재방문이 필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여긴 가격이 저렴해도 사람이 꽉 차는 것을 보고 괜찮게 나오겠다 싶었다. 우리가 앉을 때도 한 테이블이 겨우 남아있었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빠졌다 들어왔다 했다.
모든 메뉴 7천원에 제공되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백반집.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여기 제일 시그니처인 것 같은 모듬정식을 주문했다. 제일 앞단에 적혀 있기도 하고 그냥 제일 여기 베스트일 것 같았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메뉴가 나왔다. 콩나물과 김치 반찬이 놓여지고 도시락통 같은 것에 4가지의 찬들이 담겨 나왔다. 처음에 이것을 보고 '이것도 반찬인가? 대박이다' 싶었다. 아직 내가 주문한 메뉴는 안 나온 줄 알았다. 근데 저게 내가 주문한 모듬정식 메뉴였다. 일행과 나 각각 하나씩 놓아주시더라. 그리고 펄펄 끓는 찌개 하나가 같이 제공되었다. 사실 저게 찬으로 나올 정도면 메인이 또 있다는 것인데 생각해 보면 그건 말도 안 되긴 하겠다. 4가지 찬에 햄과 계란말이, 제육볶음, 볶음김치가 있는데 저게 밑반찬이면 메인이 또 있다는 말인데 7천원 구성에 절대 안 되겠지. 손님 입장에서도 그건 좀 욕심이겠다. 무슨 뷔페도 아니고.
그렇게 하나하나 찬을 맛보면서 흰쌀밥을 같이 먹어주었다. 갓 지어진 밥처럼 뜨끈뜨끈하니 찰기 있게 잘 나왔다. 사실 요즘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는다. 나 역시 때때로 체감하고 있다. 요즘은 예전보다 밖에서 잘 식사를 안 하다 보니 덜하긴 한데 확실히 뭔가 기본 단위 자체가 달라졌더라. 뭐만 하면 만원 지폐 한 장이 넘어간다. 카드를 쓰고 있어서 체감이 덜하는 것이지 아마 현금을 사용했으면 더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근데 요즘은 현금 자체를 잘 쓰지 않으니까. 그래서 확실히 현금 시절보다는 사람들이 더 무뎌진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눈으로 확인해야 믿는 경향이 있으니까. 디지털 숫자로 표현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겠다. 아무튼 이 가게 요즘 물가에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게 먹을 수 있는 가정식 백반집은 맞겠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여러 가지 먹을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한 점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햄에 케찹까지 같이 주는 센스도 좋았고. 사실 케찹이나 이런 소스 종류는 많은 가게들이 놓친다. 테이블마다 구비해 두기도 뭐하고 바쁜 점심 피크 시간에 저걸 하나하나 넣어주기도 애매하고 말이다. 근데 여긴 이런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물론 주변을 살펴보니 케찹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더라. 인공적인 맛보단 재료 본연 자체를 더 즐기시더라.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의 미각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항상 뭐를 먹든 소스와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도 소스를 적당히 먹는 것이 아니라 듬뿍듬뿍 찍어서 먹기 때문에 항상 어딜 가든 소스가 부족한 편이다. 계속 달라하기도 뭐 하고 달라고 요청드리면 또 조금만 주셔서 웬만하면 직접 가져다 먹는 편이다. 그럴 정도로 좋아하는데 이렇게 점심시간에 케찹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가격은 7천원이었지만 양과 퀄리티는 7천원 그 이상의 값을 했다. 정말 재료가 만들어둔 뒤에 뭐 식거나 굳은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좋았다. 신선했다. 정말 모든 메뉴를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두시는 것 같긴 한데 확실히 다른 곳들과 비교해서 여기만의 매력이 있었다. 진짜 집밥 그 느낌이었다. 평일 간단히 저녁을 해치워야 할 때 만날 수 있는 느낌이랄까. 가성비 좋은 가격에 좋은 찬들과 함께 식사를 잘 해결했다. 여기 저녁 장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저녁에 와도 괜찮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구성과 금액은 점심때와는 다르겠지만. 만약 용산 주변에 계시는 분이라면 이 가게를 한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모두가 다 아는 맛이기 때문에 찾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가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