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왠지 정감 가는 비주얼과 맛
다른 가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 가게만의 차별화된 맛이라든가 비주얼, 분위기 등을 경험하는 것도 매우 값지다. 근데 때로는 이게 익숙하고 아는 맛이고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여기가 정말 진짜인 것 같은, 한번 오고 또 찾아가게 되는 그런 가게들을 만날 때도 꽤나 반갑다. 뭔가 나만 아는 맛집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고 누가 이 동네에 오면 여길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곳을 종종 만나면 알아뒀다가 꼭 가고 있다. 아마 오늘 소개할 곳이 좀 그런 느낌의 가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른 것은 여기 근처에 직장인들이 많아서 이미 여길 다들 애용하고 있다는 것. 나의 경우 이날 저녁에 먹어서 상대적으로 한산하게 먹었지만 여기 근처에 있는 친구는 여기 종종 온다고, 점심에 사람 많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들어와서 메뉴 고민은 할 것도 없었다. 솔직히 이날 입맛이 별로 없어서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안 먹고 집에 돌아갈까 싶기도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기도 해서, 그냥 이왕 온 김에 맛이라도 보자 싶었다. 아예 안 먹은 것과 한입이라도 먹는 것은 다르니까 말이다. 근데 실제로 친구를 만나니 뭔가 허기짐이 올라오긴 했다. 아무튼 그렇게 여기 용산 전자상가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는 밥집 두리분식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여기도 점심장사가 메인인지라 저녁엔 한산했다. 두 테이블 정도 술을 즐기고 있는 손님들이 계셨고, 나와 내 친구는 한쪽에 앉아 김치찌개 2인분을 주문했다. 그리고 메뉴는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확실히 이런 직장인 근처 장사는 속도가 생명이다. 나오는데 오래 걸리면 다음에 또 재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점심시간은 소중하니까.
처음부터 먹어도 되는 것 같긴 하지만 조금 더 보글보글 끓기를 기다렸다. 고기가 좀 허옇게 보이기도 하고 그냥 국물이 좀 졸아서 더 짭조름하게 먹고 싶었다. 진짜 짠 음식도 좀 줄여야 하는데 너무 좋아한다. 그래도 나름 짠 음식을 줄여가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밑반찬들이 나왔다. 확실히 동네에 있는 가게와 다른 점 하나는 약간 백반은 아니지만 그런 스타일로 나온다는 것이다. 밑반찬으로 저 소세지를 받아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케첩도 같이 나오고. 바로 하나 먹을 수밖에 없었다. 흰쌀밥도 좋고. 분명히 오기 전엔 별로 먹을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비주얼을 보니 들어가긴 들어간다. 뭐 어떻게든 살아가긴 하나보다.
하나 추가한 라면사리가 적당히 다 익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덜 익었다고 하더라도 이때 한번 먹어야 그 다음 한 젓가락이 퍼지지 않고 먹을 수 있겠다. 꼬들한 면이 처음엔 좀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뭔가 이상하게 매력 있다. 꼬들면이라는 표현도 누가 처음 말한 건지 갑자기 대단하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아까부터 강한 불로 끓였기 때문에 면발 안에도 간이 배어있겠다. 여기에 사장님이 라면수프를 넣으셨는지 안 넣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면만 먹더라도 간이 딱 알맞게 맛있었다. 이게 정말 익숙한데 맛있는 그런 맛이다. 비주얼은 그냥 집에서 먹는 정감 가는 비주얼인데 맛 역시도 그렇다. 다만 수고스러움이 안 들어가는데, 이 가격이면 합리적으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맛이랄까.
김치도 아삭아삭 너무 좋고, 두부 식감도 너무 좋고 고기도 튼실하게 잘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국물 역시 매콤하면서 짭조름하게 맛있었다. 밥을 계속해서 부르는 맛이랄까. 솔직히 다른 찬 필요 없이 이 김치찌개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왜 여기가 용산 전자상가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는 밥집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크게 호불호가 없을 맛이고 한번 먹으면 고기도 듬뿍 들어있겠다 든든하고, 느끼하거나 더부룩한 부분도 없고.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겠다. 그리고 직장인의 점심은 꽤나 중요한데 거기서 살아남은 가게라면 뭐 더 증명할 필요도 없겠다. 여의도에 가면 살아남는 곳들만 살아남고 정말 잊히는 곳들은 쉽게 잊힌다. 또 거기에 새로 가게가 생기는데 그중에 살아남는 가게만 살아남고. 직장인 근처 장사는 입소문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오랜만에 케첩 묻혀진 소세지를 먹으니 또 맛있기도 했다. 그 탱글탱글함도 좋고 소세지 향도 좋았다. 요즘 먹을 기회가 딱히 없었는데 여기 두리분식에 와서 오랜만에 이렇게 먹어봤다. 그리고 국물이 다 졸아가는 것 같아 이쯤에서 불을 끄고 음식을 즐겼다. 김치 식감 너무 좋고 고기도 부드럽고 너무 맛있었다. 다만 아까 잠시 돌아왔던 입맛이 다시 조금씩 사라져서 공깃밥을 다 해치우진 못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 원래 몇 숟갈 먹고 말 줄 알았는데 거의 반공기 넘게 해치워버렸다. 국물은 좀 짜긴 했지만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고, 짠맛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감칠맛이 살아있어서 계속해서 손이 나갔다. 맛있었다. 원래 이런 아는 맛에 한번 빠지면 그게 더 무섭다. 새롭고 특별한 맛은 자주 못 즐기지만 이 맛은 계속해서 물리지 않게 즐길 수 있으니까.
원래 평소에 두부도 잘 안 먹는 편인데 이날은 두부도 좀 먹었다. 원래 두부를 먹으면 포만감이 올라와서 차라리 밥을 한숟갈 먹는 편인데 여긴 국자로 한 번씩 푸면 이렇게 고기와 두부가 같이 올라와서 골라먹기도 뭐하고 그냥 같이 먹었다. 그리고 김치가 맛있어서 따로 찬에 올라온 김치를 따로 먹어봤는데 그냥 찌개 안에 들어가 있는 김치가 더 맛있었다. 이미 저 맛에 빠져서 다른 맛은 미각에서 못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친구와 기대하지 않았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친구는 킥보드, 나는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후 운동까지 꽤나 만족스러웠던 하루다. 두리분식, 이미 용산 전자상가에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그런 가게지만 충분히 매력 있는 가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