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숲 곶자왈공원, 혼자 생각하기 좋은 곳.
(Jeju park, hwansang forest)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어정쩡하게 남았다. 그래서 주변에 어디 갈 곳이 있나 하고 찾아보니 이 제주 환상숲 곶자왈공원이 딱 보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항상 눈에 보여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사진을 살짝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느낌의 장소였다. 뭔가 혼자 생각하기 좋은 곳 같았다. 그래서 전화로 영업시간을 물어본 뒤 마지막 타임이 남아있단 얘기를 듣고 바로 출발했다.
우선 매표소에 가 표를 끊었다. 성인은 5,000원으로 부담 없는 가격이다. 그리고 운영시간 매 정시마다 숲 해설이라 하여 1인 이상이면 해설가가 동반하여 한 바퀴 돌며 이곳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 근데 오늘 나의 이곳 컨셉은 '혼자 생각하기 좋은 곳'이기에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훨씬 더 좋았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설명을 듣기 때문에 이 넓은 곳을 조용히 걸어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진찍기도 훨씬 편하다.
슬슬 입구로 들어가 볼까나. 간판부터 기괴한 것이 느낌이 좋다. 들어가기 전, 미리 보기가 있는데 우측부터 해서 쭉 한 바퀴 돌 예정이다. 나의 경우 사진도 찍고 조용히 멍도 때리고 여유롭게 걸어오다 보니 총 1시간 정도 걸렸다. 그냥 계속 걷기만 하면 30분도 안 걸릴 정도의 거리다. 경사가 있는 편도 아니여서 누구든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다.
들어오자마자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긴 하구나'하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사실 인터넷에서 일본의 숲을 봤을 때 정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창하고 사슴이 걸어다니는 곳도 있고. 근데 그와 견줄만한 곳이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기분이 좋아졌다.
각 구간마다 저렇게 푯말과 문구가 있는데 지나가다 한 번씩 읽어보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사람이 정말 없었다. 동영상을 찍을 때 가끔 한 두 가족이 지나가곤 했었는데 다들 워낙 빨리 지나가는 편이라 다시 나 홀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때만큼은 스마트폰도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사용 안 했던 것 같다.
이날 비가 왔다 안 왔다 해서 사진마다 밝기가 조금씩 다르다. 어둡게 나온 사진들이 아마 내가 실제로 봤던 모습이 맞겠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길옆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있는 사진이 뭔가 이뻐 보인다. 가만히 보면 저럴 때마다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다. 이것도 뭔가 심리적으로 관련된 게 있는 건가.
가끔 나무에 종이 걸려있는 곳이 있는데 용도는 잘 모르겠다. 해설을 들었으면 알 수 있겠지만. 추측을 해보자면 길을 잃었다거나 아니면 바람에 나무가 흔들릴 때 자연의 소리와 같이 들리게 함이 아닐까 싶다.
'꿈에 보았던 그 길에 서있네'
겁도 많고 신경 쓰는 것도 많아 현실 가능성이 낮지만 후에 산에서 강아지들과 살게 된다면 이런 숲속을 거닐며 살고 싶다. 이 사진은 딱 보면 그냥 '자연'이 느껴져서 좋다.
때죽나무.
칡과 등나무처럼 서로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칡과 왼쪽으로 엇갈려 올라가는 등나무.
곳곳에 누가 쌓았는지 모를 돌탑도 보이고. 예전에 돌탑을 쌓는 걸 정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특정 상황에 특정인이 생각난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슬슬 쉴까 하던 시점에 얼음골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산책로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름에서부터 연상할 수 있듯이 아래로 내려가면 시원할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실 계속 걷느라 더워서 쉴 곳이 필요했었는데 좋은 위치에 딱 있었다. 내려가 보았다.
나무 의자가 있어 앉았다. 시원했다. 놓여있는 온도계를 봐보니 약 15도 정도로 지상보다 최소 10도 이상이 낮았다. 바로 위를 쳐다보면 내가 내려왔던 곳이 보이는데 몇 미터의 높이 차이로 어떻게 이런 환경이 갖춰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했다. 여기만큼은 유독 해설이 궁금했다.
여기서 멍도 때리고 전화도 하고 하며 땀을 식혔던 것 같다. 추운 게 아니라 진짜 시원했다. 어르신들도 해설을 듣다가 이곳에 와서 쉴 때 아마 가장 좋아하실 것 같다.
그렇게 얼음골을 마지막으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여기서 제일 좋았던 장소는 사슴을 만났던 곳이다. 원래 흔히 만나는 것인지 나만 우연히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숲속 한가운데 사슴 한 마리가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스마트폰을 바로 들었는데 사진으론 거리가 멀어 담기지 않았다. 살짝 다가가니 눈치가 빠른 녀석이 도망가버렸다. 동물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공간이 아닌 자연환경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환상숲 곶자왈공원. 갑작스럽게 왔지만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었다.